문창과 출신이 폭로하는 ‘감성글=시’라는 착각, 자칭 시인들이 싫어하는 3가지

2026-07-04 · 라이프스타일 · 읽는데 6분

SNS에서 ‘시’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글들, 한 번쯤 보신 적 있을 것입니다. 예쁜 배경 사진 위에 가운데 정렬된 짧은 문장, ‘너와 나의 사랑은’ 같은 추상적인 감정을 엔터키로 띄어쓰기한 형태의 글들 말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창과 출신의 시선으로 보면,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릅니다. 감성글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공식에 가깝고, 시는 훨씬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장르입니다. 이 글에서는 SNS 감성글이 왜 시가 아닌지, 자칭 시인들이 어떤 점에서 비판을 받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감성글은 ‘시’가 아니라 ‘템플릿’이다

SNS에서 흔히 보이는 감성글을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아래 조건만 따라 해도 누구나 비슷한 글을 3분 만에 만들 수 있습니다.

  • 주제는 ‘사랑’, ‘그리움’, ‘추억’ 같은 아주 추상적인 감정으로 설정한다.
  • 화자와 대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나와 너’라는 모호한 관계만 사용한다.
  • 엔터키를 남발해서 행을 마구 나눈다. ‘나와/너의/사랑은/현재진행형’ 이런 식이다.
  • 픽사베이나 언스플래쉬 같은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예쁜 배경 사진을 가져온다.
  • 글은 가운데 정렬하고, 필명은 ‘글을 쓰는 28세 여자’ 같은 형식으로 짓는다.

이런 글들은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버려집니다. 청계천 헌책방에 가면 SNS 감성글을 엮은 시집이 수백 권씩 쌓여 있지만, 문학과지성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제대로 된 시집을 찾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한때 좋다고 느꼈던 문장도 시간이 지나면 별 감흥 없이 삭제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는 ‘결핍’에서 시작되고, ‘경제적 언어’로 완성된다

문창과에서 시 창작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듣는 말 중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시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어야 쓴다”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그 감동을 바로 글로 옮기는 것은 시가 아니라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시는 그 감정을 더 정제하고,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해 표현해야 합니다.

시를 ‘경제적 언어’라고 정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성된 문장과 호흡의 집합이라는 뜻입니다. 문창과생들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고민하는 지점을 보면 이 차이가 더 명확해집니다.

  • 마침표를 넣을까 말까: 넣으면 어색할 것 같고, 안 넣으면 끊어내는 느낌이 없어 고민된다.
  • 연을 나눌까 말까: 한 번 끊는 게 좋을 것 같으면서도, 전체 흐름을 생각하면 그냥 가는 게 자연스럽다.
  • 단어를 바꿀까 말까: 튀는 단어인 건 알지만 딱 맞는 대체어가 없어 몇 주를 고민한다.

이런 고민을 거쳐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데 두 달이 걸리는 경우도 흔합니다. 반면 감성글은 3분이면 만들어집니다. 시에서 행과 연은 독자의 무의식적인 호흡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지만, SNS 감성글은 단순히 가독성을 위해 엔터키를 남용할 뿐입니다.

자칭 ‘시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 유형

1. 클리셰의 남용으로 진부해진 글

SNS 감성글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문제는 클리셰의 남용입니다. ‘너는 힘들다. 뭔진 모르겠지만 힘들다.’, ‘세상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 ‘가을은 외롭고 겨울은 고독하며 봄은 사랑이다.’ 이런 문장들은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클리셰가 강력해서 뇌리에 박히는 효과는 있지만, 너무 자주 쓰이다 보면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시나리오 전공 교수님의 말처럼, 남들이 다 공감할 수 있는 글은 쉽게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가치 있는 글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그 안에 넣어야 탄생합니다. 대성하는 유튜버들이 남들 다 하는 짓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2. 실력 없이 실익만 챙기려는 태도

진짜 문제는 감성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제대로 쌓지 못한 실력을 이용해 남을 가르치거나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는 태도입니다. 어중간한 실력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겠다는 사람들 중에는 제대로 가르치는 경우가 드물고, 오히려 잘못된 습관만 심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인된 능력도 없으면서 그 능력을 자만하는 사람들만큼 위험한 경우는 없습니다. 본인들끼리 감성글을 쓰고 즐기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취미생활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시’라고 포장하거나, 그걸로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태도에 있습니다.

문학계의 현실 작품 도용과 보호 시스템의 부재

감성글과 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학계에서 작가와 작품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단편소설 ‘뿌리’의 작가 김민정 씨는 자신의 작품이 손창현이라는 인물에 의해 통째로 도용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토시 하나 빼지 않고 복사한 작품으로 무려 다섯 개의 문학상을 받아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더 충격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도용 사실을 문학계나 주관 기관이 먼저 알아낸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먼저 발견했다.
  • 손창현은 이외에도 경제 아이디어 공모전, 슬로건 공모전 등에서 추가적인 표절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원작자인 김민정 작가가 법적 대응을 검토했지만,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주관 기관은 없었다.

김금희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작가와 작품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단 한 번의 구글링만 있었어도, 아니면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만 있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감성글, 시, 그리고 문학의 경계에서 생각해볼 점

SNS 감성글을 쓰고 공유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취미이자 자기표현의 방식입니다. 다만 자신이 쓰는 글이 ‘시’인지 ‘감성글’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는 무언가 결핍된 상태에서 시작해, 경제적인 언어로 정제되고, 독자의 호흡과 감정을 조절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반면 감성글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공식을 따르고,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집니다. 두 가지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그것을 ‘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됩니다.

문창과 출신으로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것입니다. ‘남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진짜 가치 있는 글은 그 차이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겸손하게 쓰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