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옛 이름 중 하나가 '갑비고차(甲比古次)'입니다. 이 이름은 단순한 지명을 넘어, 우리나라 고대사의 중요한 단서를 숨기고 있습니다. 윤여동설에 따르면, 갑비고차는 깊은 협곡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의미하며, 이는 고구려의 혈구(穴口)나 신라의 해구(海口)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지명은 강화도뿐 아니라 중국 하북성 천서현의 청산관 부근과도 연결되는 주장이 제기되어, 역사학계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갑비고차는 왜 두 가지 다른 의미로 해석될까
갑비고차의 의미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윤여동설이 주장하는 '깊은 협곡으로 들어오는 입구'라는 뜻입니다. 이는 갑비(甲比)를 '깊은 협곡', 고차(古次)를 '입구'로 보는 해석입니다. 고구려가 이곳을 혈구(穴口)로 개칭한 이유도, 깊은 협곡인 '혈(穴)'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두 번째 해석은 우리 고유어에 뿌리를 둔 접근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갑비'는 '가+ㅂ'을 음차한 것으로, '갋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갋다'는 '맞서다', '나란하다', '겹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화도는 한강이 서쪽과 남쪽으로 갈라지고, 임진강과 예성강까지 세 물줄기가 만나는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갑(두 개, 겹쳐 있다)'과 '곶(바다나 호수 쪽으로 튀어나온 땅)'이 합쳐져 '갑곶'이 되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갑비고차라는 설명입니다.
혈구와 해구, 고구려와 신라는 왜 다르게 불렀을까
고구려와 신라는 같은 장소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고구려는 이곳을 혈구(穴口)라고 불렀는데, 이는 깊은 협곡인 난하(옛 패수) 지형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지금도 중국 하북성 천서현 청산관 북쪽의 난하는 깊은 협곡을 흐르는 강으로 유명합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이 협곡을 '혈(穴)'로 표현하고, 그곳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혈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반면 통일신라 시대에는 이곳을 해구(海口)라고 개칭했습니다. 이는 바다로 나아가는 입구라는 의미입니다. 고구려와 신라가 같은 장소를 다르게 본 이유는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내륙에서 바다 쪽으로 보았다면, 신라는 바다에서 내륙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갑비고차의 진짜 위치는 강화도일까, 중국 하북성일까
윤여동설의 가장 파격적인 주장은 갑비고차의 위치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기존의 통설과 달리, 갑비고차가 한반도의 강화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천서현 청산관 부근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고조선 때의 갑비고차는 고구려의 혈구, 신라의 해구, 고려의 강화로 이어졌다는 기록 -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은 지금의 하북성 관성만족자치현이라는 주장 -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판각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는 해석
하지만 이 주장은 기존의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강화도에 남아 있는 갑곶돈대, 갑곶나루터, 참성단 등 수많은 역사적 유적과 지명이 강화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화군은 고구려 때 혈구군 또는 갑비고차로 불렸고, 통일신라 때 해구군, 고려 시절부터 강화군으로 불려왔습니다.
강화도 지명에 남은 갑비고차의 흔적들
강화도에는 갑비고차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갑곶리(甲串里)입니다. 강화대교 서단에 위치한 이 마을 이름은 강화의 가장 오래된 지명인 갑비고차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갑곶돈대 근처에는 갑곶나루터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강화도는 '곶'으로 둘러싸인 섬입니다. '월곶', '장곶', '북일곶' 등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화도 전체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화(江華)'라는 이름 자체도 '강(江)'과 '곶(串)'의 음차인 '화(華)'가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꽃 花' 대신 '빛날 華'를 사용한 것은 더 좋은 뜻을 담으려는 의도였습니다.
손돌목과 석모도, 갑비고차와 연결된 다른 지명들
갑비고차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지명이 강화도에 더 있습니다. 광성보 안에 있는 용머리돈대 앞 해협의 좁은 물길을 '손돌목'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뱃사공 손돌과 고려 왕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지만, 실제 한자 이름은 '좁은 물길'을 뜻하는 착량(窄梁)입니다. '손돌'은 '가늘다, 좁다, 뾰족하다'는 뜻의 '솔다'와 작은 개울을 뜻하는 '돌'이 합쳐진 '솔은 돌'이 변한 말입니다.
석모도(席毛島) 역시 비슷한 사례입니다. 이 섬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물이 강화도를 돌아 바다로 나가는 곳에 위치합니다. '바닷물과 강물이 돌아가는 곳'을 '돌모루섬'이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석모로도(席毛老島)가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말까지 이 이름이 사용되다가 지금의 석모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돌'의 뜻을 가진 한자 '석(石)' 대신 같은 소리의 '석(席)'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갑비고차의 비밀,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었나
갑비고차는 단순한 옛 지명이 아닙니다. 이 이름 속에는 강화도의 지형적 특징, 고대인들의 세계관, 그리고 역사적 변화의 흐름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 지형적 의미: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갑(겹쳐 있다)'과 '곶(뾰족하게 튀어나온 땅)'이 합쳐진 지명
- 역사적 변화: 고구려의 혈구 → 통일신라의 해구 → 고려의 강화로 변화하면서 각 시대의 시각을 반영
- 논쟁의 핵심: 윤여동설은 이 지명이 한반도 강화도가 아닌 중국 하북성의 지명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존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음
강화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갑곶돈대에 서서 염하를 바라보며 '갑비고차'의 의미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두 곶이 마주 보고 있는 나루터, 깊은 협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이름 속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